헤르만 프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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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나치 독일의 친위대 집단지도자 및 무장친위대 중장이다.
2. 초기 행적[편집]
독일 중부의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에서 태어난 프리스는 1919년 1월에 발트의용군에 소속되어 볼셰비키와 싸운 공로로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육군에서 근무한 프리스는 1934년에 친위대 특무기관으로 이적했다.
3. 제2차 세계 대전[편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폴란드 침공에 종군해 1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이어서 벌어진 서방전격전에서 테오도어 아이케의 제3 SS 장갑사단예하의 포병연대장으로 부임해 알라스에서 영국 및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독일군이 플랑드르로 진공하는 돌파구를 마련했다. 독소전쟁에서도 그는 1941년에 데미얀스크에서 소련군에게 포위된 아군의 구원작전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1943년 2월에 사단장이던 아이케가 전사하자 프리스는 제3 SS 장갑사단의 사단장으로 취임해 소련군과 싸웠다. 소련군을 격퇴한 공로로 1943년 9월에 백엽 기사 철십자훈장을 수여받은 프리스는 1944년 4월 24일에는 다시 백엽검 기사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1944년 11월부터 제1 SS 장갑군단 <LAH>의 사령관으로 부임한 프리스는 12월의 아르덴 공세에서도 활약했는데 1945년 2월부터는 헝가리 지구에서 소련군과 대적했다.
4. 전후 전범 재판과 행적[편집]
독일의 패전 후 요아힘 파이퍼와 함께 벨기에에서 미군포로를 살해한 전쟁범죄 혐의로 기소된 프리스는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지만 1954년에 석방되어 은거생활을 하다가 1985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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